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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지방행정체제
작성자 :
김명수
날짜 :
2008-10-01
민주당이 18대 국회 들어 당론으로 추진의사를 밝힘에 따라 촉발된 지방행정체제와 행정구역 개편에 관한 논의가 백가쟁명 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여, 이 사안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각 정당과 지자체가 어떠한 패를 쥐고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게끔 되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논거는 행정계층을 줄여 광역화함으로써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저비용 고효율로 바꿔 보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행정구역을 생활권으로 조정하여 얻을 수 있는 행정서비스 효율성이나 지역감정 해소 효과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광역화의 논거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려한 지방자치권의 강화에 대한 언급이 쏙 빠져 있다는 점이다. 광역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끌어다 쓰는 외국의 사례들도 입맛에 따라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아 왜곡이 심한 편이다. 예컨대 자치계층의 슬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드는 영국의 감축사례는 1997년 노동당 집권 이후 런던을 비롯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그리고 북아일랜드에 각각 광역지방정부가 부활됨으로써 잉글랜드의 일부 도시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2계층제로 전환된 사실을 도외시한 소치다. 17세기부터 중앙집권 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한 유럽대륙의 여러 나라들 특히 프랑스가 3단계 자치·행정계층에 준초광역(準超廣域)적 자치계층을 추가한 배경은 광역자치단체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바라봐야 할 부분이다. 이렇듯 행정의 효율성만을 근거로 광역시·도를 폐지하려는 것은 지방분권과 시민참여를 근간으로 하는 지방민주주의의 싹을 짓밟는 중앙 패권주의적 발상이다. 대부분의 통합론자들은 소규모로 나누어진 정부구조가 불필요한 업무중복이나 행정서비스의 불명확한 책임소재 등으로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많은 경험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공공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제시되고 있지 않다. 중앙 정치권이 가지고 있는 개편안을 보면 도를 폐지하고 234개 기초자치단체를 2~5개 씩 통합해 70여개의 통합시로 개편한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물론 산술적으로 보면 자치구역을 확대하는 것이 효율적일지는 모르나 이미 우리나라의 자치구역은 올바른 지방자치의 정신을 구현하기에는 너무 넓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진국의 기초정부 규모가 수천 명 수준인 데 비해 우리나라의 인구규모는 무려 20만 명을 초과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에 속하면서도 기초자치단체 당 평균 면적은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 독일의 211배가량이나 된다. 이렇게 해서는 주민의 참여가 보장되고 행정 서비스가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주민자치를 실현할 수 없다. 근래 많은 선진국들이 지방민주주의의 활성화와 지역사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동네분권(neighborhood decentralization)'을 앞 다퉈 추진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역주행하고 있는 꼴이다. 교통·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람들의 시공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비교하면 획기적으로 변화했으며 생활패턴도 크게 달라졌다. 이에 따라 행정체계나 구역도 시대를 반영해 변용할 필요는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까지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의를 뜯어보면 민주성의 확보나 주민편의성의 확보 같은 개편의 원칙과 기준을 정하는 절차는 온데간데없고 각 정당이 내놓은 개편안만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정부와 제정당은 정치적인 목적에서 행정체제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는 의혹을 사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범국민적인 논의의 틀을 마련하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해 가며 논의를 진행시켜야 마땅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존폐가 걸려 있는 문제이니 만큼 각 지자체도 민주적인 자치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입법활동에 참여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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