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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상권의 평화’, 이것만은 지켜주자
작성자 :
유유순
날짜 :
2009-08-24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 어귀 목 좋은 곳에는 각종 채소는 물론 소금에 절여 놓은 고등어 등 생선까지도 구비해 놓은 구멍가게들이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 자락에 걸릴 때쯤이면 저녁 장거리를 보러 온 어머니들이 동네 이곳저곳을 내달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놓고 가게 주인과 물건값을 흥정을 한다. 그곳 옆 평상에는 동네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인심 좋은 어르신들은 어머니 뒤에 서서 더 놀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을 불러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인심 좋게 사주곤 했다. 그곳 슈퍼에서 파는 물건들은 포장부터 어딘가 어수룩했지만 에누리가 있었고 그 에누리 속에서는 사람 사는 맛이 있었다. 이곳 가게들은 동네 사정에도 훤했다. 동네에 사는 주민들의 가정사에도 훤했고 어디가 이사를 가는지 어디가 이사를 왔는지도 즉각 이었다. 집을 구하러 오는 신혼부부들은 으레 동네 어귀 슈퍼를 찾아 동네 시세를 알아볼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가게 주인의 연결로 집도 찾을 수 있었다. 이 가게들은 물건만 있는 곳이 아니라 정이 있었고 대가 없는 정보의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이곳 슈퍼들이 조금씩 몸집을 불리고 세련미를 포장했지만 그래도 그 옛날의 향수를 추억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이웃사촌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슈퍼를 앞에 더 붙인 슈퍼슈퍼마켓이라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려고 한다.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이 대형마트로도 성이 차질 않았는지 동네 골목에 자신들의 깃발을 흔들며 들어오려 채비를 하고 있다. 벌써 들어온 곳도 있다. 함께 정을 나누던 인간적 슈퍼마켓들이 그저 공산품이 넘쳐나고 메마른 정가가 바코드로 찍혀 있는 상품적 슈퍼마켓에 위협을 받게 됐다. 우리 동네에서 수십년을 함께하던 그 슈퍼마켓은 이 골리앗과 같은 슈퍼마켓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다. 백전백패가 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지역에 있는 마트와 대기업의 마트 싸움만 봐도 알 수 있다. 몇몇 지역 마트가 그 힘겨운 싸움에서 너덜너덜 걸레 신세가 되면서 살아남아 회생의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대형 슈퍼마켓까지 들어 와버리면 이들 마트 역시 문을 닫아야 한다. 하물며 동네 슈퍼들은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깨끗하고 물건이 많고 쾌적한 공간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다. 대형유통조직인지라 물건이 대규모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니 그만큼 가격이 쌀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 젖 먹던 어린아이에게 공장에서 만든 이유식 먹여야 하는 꼴로 변할 수 있어 왜인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람들이 깨끗하고 세련된, 무엇인가 문화적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이들 슈퍼를 이용하려 하겠지만 잃을 수 있는 것이 또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한 시민사회단체에서 대형 마트와 지역 마트의 가격차를 비교했더니 대형 마트가 싼 것도 아니었다. 싸 보이는 것일 뿐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경쟁에 의한 가격결정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곳에 대한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은 존중한다. 하지만 무차별적 자본의 폭격으로 기존의 업계를 소용돌이치게 하는 것은 자유시장의 미덕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슈퍼마켓 주인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투쟁을 하러 다니겠는가. 슈퍼주인들까지도 거리로 내몰아야 할 이유가 없다. 체급이 비슷한 사람끼리 넓은 곳에서 싸워주기 바란다. 골목과 동네는 그네들만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질서를 지키고 살아야 한다. 그곳에서 통용되는 최소한의 룰은 지켜주자. 슈퍼가 두 번이나 붙는 SSM(Super Super Market)은 한국사회에 필요치 않다. 지자체는 물론이고 국가에서는 이 정도 규제는 마련해 주자. 서민들의 정이 살아 숨 쉬는 그 평온한 골목에는 숨막히는 경쟁이 미덕으로 치켜세워지는 천민자본주의가 들어오지 않도록 평화를 지켜주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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