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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버린 어린 피해소녀를 위한 출발
작성자 :
김연근
날짜 :
2009-10-15
“성교육이요? 학교에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데요. 그래도 일산 엘리베이터 그 애처럼 강하게 저항해야 한댔어요” 최근 어느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초등학생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아동 성폭력 예방교육의 현실이다. 실질적인 교육은 없고 ‘알아서 저항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아동 성폭력 문제’라는 홍역을 앓고 있다. 우리 전라북도도 예외는 아니다. 15세 이하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는 2006년 57명, 2007년 117명, 2008년 164명으로 2년 동안 평균 70%로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는 ‘아주 가까운 곳에, 이미 알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고 한다. 부모들이 불안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아이를 격리시키지 않는 한, 언제든지 성폭력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서울 강남에서는 사설 경호원까지 쓰겠는가? 그것도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의 얘기고, 대다수 사람들은 “여학교 교복을 바지로 바꾸자”는 식의 ‘울며 겨자먹기식’ 처방을 내놓고 있다. 모든 범죄는 처벌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성폭력처럼 인생을 뒤바꿔버리는 끔찍한 범죄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범죄를 저지를 만큼 내면세계가 파괴된 사람은 ‘사후 통제’ 중심의 형사법적 조치로는 한계가 있다. 그들은 오히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느슨한 처벌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더불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학교폭력예방법’이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현행 관련법으로는 피해자 보호 장치가 절대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이다. 심리상담과 일시보호, 요양을 통해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싶어도 각 학교와 자치단체별 연계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고, 교육청에도 표준화된 매뉴얼이 없다. 지난해 여름, 본인은 법률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청소년 성폭력과 유해환경 차단’을 골자로 하는 조례를 입법했다. 지금껏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없었던 만큼 사회적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돼 이 곳 저 곳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전라북도는 ‘아동보호 CCTV 설치율 0%’란 지적을 받음으로써 현행 조례를 무색케 만들었다. 약 4개월에 걸쳐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제정된 이 제도를 허울로만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무늬뿐인 조례를 폐지해야 옳을 것인가? 제도의 입안자로서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성폭력의 뿌리를 뽑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각 분야의 노력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사회복지 관점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법제도 관점에서 비행을 관리하여, 건전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나 제도는 다른 법들과 연계될 때 그 실효를 기대할 수 있다. 지역별 연계망구축에 대한 통합작업이 시급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회복적 사법프로그램 운영기관, 교육기관, 사회복지기관 등이 연계망을 구축하고, 피해자 회복을 위한 네트워킹, 이를 추진하고 운영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 지원기금마련 등 재정적 뒷받침까지 병행되어야 한다. 하나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우고 제도를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제도마련 이후에도 별 효과가 없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그렇다고 제도를 마련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정형화된 제도에 변화무쌍한 사회문제를 가둬놓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의지와 고민을 담아놓은 것이 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나은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고, 어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미래를 짓밟아버리는 치명적 범죄를 예방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 시작은 ‘지금 당장’이고 그 출발점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역사회’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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