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문화관광건설위원회 위원의 자격으로 타이랜드를 다녀왔다. ‘자유의 나라’를 뜻하는 태국을 연수국가로 선택한 것은 세계 최대의 불교문화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관광대국으로 성장한 이 나라의 관광지원정책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연수 과정에서 우리는 태국이 국가발전을 위해 관광산업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관광청 관계자를 통해 들었고 실제로 관광지들을 둘러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고 솔직히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드물기만 한 우리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많은 관광객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태국 여성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경제적 역할과 지위 때문이었다. 어쩌면 동남아시아에 대한 고정관념 내지는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생각이겠지만, 우리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위치를 매우 열등한 것으로 인식해 온 게 사실 아닌가. 다른 요인들이 있겠지만 학자들은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양변제(bilateral)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양변제는 재산과 지위에 대한 권리와 혈통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계승되는 것을 말하는데, 필리핀, 자바, 말레이시아 반도 같은 도서(島嶼)동남아 전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며, 타이족, 버마족과 같은 대륙(大陸)동남아의 주요 종족집단에서 나타나는 친족형태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가부장적이고 부계적인 가족윤리를 갖는 이슬람, 불교, 카톨릭, 유교 등의 종교가 깊이 침투하였지만 이혼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이는 여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여성이 이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친정에 쉽게 받아들여져 이혼에 따른 생활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혼이 자신의 불륜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사회적으로 특별히 낙인이 찍히지 않으며, 재혼이 비교적 용이한 것도 한 이유이다. 동남아 여성들의 이혼율이 이와 같은 양상을 띠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높은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동남아지역의 여성들은 많은 국가의 여성들이 회피하는 농업, 수공업, 상업 등과 같은 분야에서의 경제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결혼과 상속시에도 자신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실제적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여성들의 경제력 때문인 것이다. 심지어 혼인과 이혼이 이슬람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말레이(Malay)지역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놀라운 일도 양변제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남녀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1C 미래 사회는 과거 물리적 힘과 권위가 지배하던 패러다임이 해체되고 감성과 섬세한 지적인 능력이 요청되고 중요시 되는 지식·정보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의 특성은 여성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적· 정서적 능력과 잘 부합되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들의 능력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교육지표’ 조사 결과가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의 취업률은 58%에 그쳐 OECD 평균 79%에도 훨씬 못 미치는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자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원의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빈약한 국가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인적자원 개발에 매진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볼 때, 많은 교육을 받고 우수한 지적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사회에서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우리 스스로가 국가 발전 동력을 소멸시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남아시아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본다. 우리 사회도 여성들이 좀 더 독립성을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하고 부족한 제도적 장치를 보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