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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칼럼
벤치마킹, 약인가 독인가
작성자 :
배승철
날짜 :
2012-03-06
벤치마킹, 약인가 독인가
벤치마킹은 본래 토목 측량의 기준점을 뜻하는 벤치마크(Bench Mark)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주로 기업경영 분야에서 타사의 기술과 경영방식 등을 자사에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벤치마킹을 기업경영에 처음 도입한 사례는 미국의 제록스사로 알려져 있다. 제록스사는 기존에 독점하다시피 해오던 복사기 시장에서 일본 캐논사의 일격을 받고 자신들의 시장 점유율을 잃게 되자, 캐논사의 제품 차별화 전략을 연구하여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 GE라는 회사까지 벤치마킹 기법을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 이후, 벤치마킹은 기업경영을 혁신시키는 기법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오늘날 벤치마킹은 기업경영 분야에만 국한되어 쓰이지 않는다. 도시계획, 캠페인, 나눔운동, 그리고 박물관 운영이나 공공기관의 근무환경 등 벤치마킹의 대상과 분야는 매우 넓다. 심지어는 자녀교육법을 벤치마킹한다고도 한다. 그만큼 벤치마킹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고, 그 쓰임새도 폭이 커졌다.
공공기관, 치밀한 비교분석·정책사례 벤치마킹
그러나 벤치마킹은 그 쓰임새가 대중화된 만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혁신기법으로서의 역할은 많이 줄어버린 듯하다. 면밀한 비교분석에 바탕을 둔 정교한 벤치마킹 사례를 찾아보기가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심지어는 벤치마킹을 단순한 사례참고나 모방과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종종 접하게 된다. 벤치마킹에 담긴 긴장과 도전정신이 누락되었다고나 할까. 이를 두고 벤치마킹의 확산이 가져온 폐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벤치마킹을 행하는 주체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공공기관이 치밀한 비교분석과 가공 없이 정책사례를 벤치마킹한다면 폐해도 이만한 폐해가 있을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설픈 정책의 실패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특정 필요에 의해서 일본의 민·관 거버넌스 시스템을 벤치마킹한다고 하자. 이 경우, 담당 공무원이든 연구기관의 연구자든, 해당 실무자는 일본의 민·관 거버넌스 시스템이 작동하는 기술적인 방식과 함께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어디에 있는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축적해온 주민참여 역량과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NPO(비영리법인)들이 활동하고 있기에 민관 거버넌스 시스템이 작동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 드러난 것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해당 사례는 자신이 속한 기관과 지역으로 이식되지 않고 철저한 실패사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남의 떡이 맛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인데, 입 안에서 느껴지는 감칠맛만 주워 담는다고 비슷한 떡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역현실에 최대한 가능방식으로 수정·변화줘야
현재 전라북도 민선 5기가 제시한 ‘삶의 질 향상’ 정책, 특히 슬로시티 정책 역시 외형에만 치달은 느낌이 없지 않다. 슬로시티 ‘성공’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불편을 감수하고 속도와 편리함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주민들의 적극적 태도이자 참여지만, 현재까지 나온 계획과 구상을 보면 주민들의 동참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정책사례 중에서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에 기초한 성공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갈 길이 막막해 보인다.
그리고 슬로(slow)시티를 만든다고 하면서 정작 추진은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려는 듯 하는 것도 그릇된 벤치마킹의 모순이다. 잰걸음으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은 모순도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두가 지역발전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슬로시티의 성과만을 보고 나머지 요소는 ‘탈’ 맥락화 시켜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발상은 좋고, 사례 발굴도 우수하다. 그러나 해당 사례를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착안을 하고 사례를 발굴하는 것으로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벤치마킹 사례가 지닌 성공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지역 현실에 최대한 그리고 가능한 방식으로 수정하여 변화를 주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더불어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긴 호흡을 가지고 전망하는 인내가 없다면 벤치마킹은 또 다른 정책실패를 불러일으키며 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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