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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길목에 서서
작성자 :
김호서
날짜 :
2011-09-01
민족시인 윤동주는 인생의 가을이 오면 스스로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 열심히 살았는지를 묻는다. 또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하여“나는 나에게/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물을 것입니다./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요절한 젊은 시인의 가을을 대하는 태도는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한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 숲이었으나/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중략)/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도종환의 가을사랑) 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잔잔한 가을 햇살에 비유했다.
영원할 것처럼 오기를 부리던 여름의 예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러지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청명함을 되찾았다.
가을은 추상열일(秋霜熱日)이라 하여 찬 서리와 뜨거운 햇살이 병존하는 계절이라지만, 가을밤은 길고, 추풍삭막(秋風索莫)이라 가을바람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가을이 깊을수록 새삼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절기상 처서가 지났다. 한낮에는 여름 햇볕이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옛날 중국에서는 처서 다음 절기인 백로에 이르는 보름 동안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논의 벼가 익는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풀도 자라지 않는다. 농촌에서 논밭 두렁의 풀베기를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와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이다. 처서가 들어 있는 음력 7월은 다소 한가하다. 농촌에서는‘어정 7월이요, 동동 8월’이라고 한다. 7월은 여유가 있어 어정거릴 수 있지만 8월은 일손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른다는 뜻이다.
절기는 수확기를 향해가고 있다. 고유의 명절 추석도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지역은 시름에 잠겨 있다. 정읍은 하루 만에 무려 420mm라는 물 폭탄을 맞으면서 농경지와 가옥, 상가 등이 물에 잠겼다. 한해 농사가 헛일이 된 것이다. 살림살이도 엉망진창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말이다. 행정력을 모두 동원해 수해복구에 나서면서 점차 옛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아무리 수해복구를 잘한다고 해도 전만 못할 것이다.
자연재해를 인간의 능력으로 근절할 수는 없다. 아무리 과학이 인류 활동의 모든 분야로 확산돼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바로 유비무환의 자세다. 그것은 생존의 한 방편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기상예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재해위험요소를 사전에 파악해 완벽하게 대비하는 일이다.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는 법이다. 재난구조시스템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수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막대하다.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산다’고 했다. 홍수가 나면 모든 걸 다 휩쓸어간다. 남는 게 없다. 지금 수해현장이 그렇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이번 수해를 통해 미흡한 점을 거울삼아 완벽한 수방 대책을 세운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급변하는 생존환경에, 기후변화에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익어가는 가을 길목에서 각자 인고하고 각성할 때 우리는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할 때다. 올가을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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