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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갇힌 문화예술진흥기금
작성자 :
배승철
날짜 :
2012-04-04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였다. 이전 해인 1972년에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의거해서 설치된 문진금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설치 이후 지금까지 2조 원이 넘는 기금이 조성되었고, 이 중 약 80% 정도가 문예진흥사업에 쓰여왔다. 지역의 문진금은 훨씬 이후에 조성되기 시작했다. 전라북도의 경우 1986에 문진금을 설치하여 조성해오고 있는데 현재는 180억원 가량을 적립하여 목표액인 200억원을 약간 하회하고 있다.
문진금이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공공재원이라는 점에 대해서 토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진금의 실질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팽팽한 이견이 존재한다. 먼저, 그렇다고 하는 쪽은 문진금이 열악한 문화예술계의 창작 역량을 유지시켜주는 보루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문진금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화예술 지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며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문진금 지원제도 민원창구로 전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은 지금까지 막대한 공공재원이 투입되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커녕,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반박한다. 지원금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지원금 수혜 자체가 창작의 수단인 동시에 목표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문진금이라는 일정한 틀을 가진 제도가 제도적 취지를 함몰시켜버리고 마는 역설적인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문진금 제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문진금 지원제도가 민원창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에 있다. 신청 대비 높은 선정비율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이웃인 충남의 경우 지난해 선정률이 90%대에 육박했고, 올해에는 80% 가까이 됐다고 한다. 총 10명이 문진금을 신청한다면 그 중 8~9명은 지원을 받는다는 건데, 이는 문진금 심사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65% 전후의 선정률을 유지하는 전라북도는 이보다 나은 편이지만 사정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타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소액다건의 지원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하면 그만큼 배제되는 신청건수는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소액다건을 통한 저변확대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진금 지원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이를 통해 어떤 정책효과를 거둘 것인 가이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관성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문진금은 헛되게 쓰일 수밖에 없다. 소액다건이냐 선택과 집중이냐가 문제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다수에게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한정된 심사위원 풀(pool)이나 밀려드는 신청 건수, 저마다 항변 등 실질적인 문진금 심사와 지원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원을 동원해서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해야 하는 행정으로서는 묘안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운영되는 문진금 지원제도에서 공리주의적 가치가 설 자리는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진금 갈등 근본적 이유 고민해봐야
올해에도 전라북도 문진금 심사결과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것도 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양대 문인단체 간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어 여파가 쉬이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논란의 세세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왜 이런 문제가 해마다 반복되는지, 그리고 지역 문화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문진금이 오히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심사기피제도나 소액 다건 및 선택과 집중의 안배 등,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보급형 개선책을 기계적으로 이식하는 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도가 지역 실정에 맞는 개선책과 근본적인 처방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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