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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미국의 비영리재단인 아시아소사이어티는 정치 리더쉽, 교육, 경제활동 등에서의 아시아 여성 지위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51% 수준으로 남녀 간 임금격차가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적인 경우와 비교해도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정치참여에 대한 많은 논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대표적인 것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나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에서 잘 나타난다. 19대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전체 300명 중 47명으로 15.6%이며, 지난 연말 4대 그룹 승진 임원 1,111명 가운데 여성은 12명에 불과했다. 여성 임원은 100명에 1명의 비율인 것이다. 틈만 나면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시초는 수렵채취의 원시공동체에서 연령과 성별로 사회적 역할을 나눈 데에서 비롯된다. 원시씨족사회에서는 남녀노소 모든 사회구성원이 생산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남녀차별은 없었다. 오히려 여성은 임신·출산·육아의 신비로운 기능을 가지고 있어 풍년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의 집행자로 그 사회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기도 하였다. 원시종교상의 신이나 고대민족종교상의 최고신이던 산신이나 호국신은 거의 모두 여성이었는데, 특히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지모신(地母神)이었다. 금속문화의 등장으로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되고 배수·관개시설과 토지의 개척·경작 등 강한 체력을 가진 남자노동력이 중요해지자 가부장권이 확립되어 여성의 예속으로 이어졌다.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이전 시대의 사회적 부조리와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유교적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한 방편으로 여자는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다는 ‘여불경이부(女不更二夫)’를 기본 규범으로 두고, 여성의 외출을 억제하여 사회 특히 남자와 격리시킴으로써 차별적 성문화를 이루어갔다. 이러한 가운데 내외법(內外法)이니 남녀칠세부동석이니 하는 규범들이 생기게 되었으며, 또한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삼종지도’·‘칠거지악’과 같은 규범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요구를 정당화하는 데 적절한 규범체계였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 한국 국민의 생활에 그대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80년대 격동의 시대를 겪으며 여성에 대한 시각도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 1990년을 전후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변화하였다. 1994년의 국회 여성특별위원회와 1995년의 대통령 직속 세계화추진위원회의 설치는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부와 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여성 발전의 모색에 따라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배려도 커져갔다. 여성지역구 할당제나 기업체에서 여성중견 간부의 숫자를 늘리고, 기혼여성의 재취업 현상도 뚜렷하다.
그러나 아시아소사이어티의 보고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여성은 여전히 고달프다. 여성의 현실이 이와 같다면 이는 우리사회의 여성정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저출산·고령화, 양극화라는 사회적 위험에 처해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일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미 노르웨이는 여성 40% 임원 할당제를 채택하였고, 프랑스는 기업 임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여성할당제를 법안으로 통과시켰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장관 동수의 ‘성평등 내각’을 탄생시켰다. 남녀 불평등, 언제쯤 우리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