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의회, 함께 만드는 전북전북특별자치도의회
우리 사회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매일매일 바라보는 세상의 가시적 모습도 그렇고,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우리들의 생각도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는 바람직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일정한 틀에 갇혀 관행화된 일상을 고집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변화하는 오늘과 내일을 보면서 그에 걸맞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교육을 보면 희망도 보이지만 걱정도 많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에 상당 부분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럴 듯했지만 도를 넘으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엇나가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민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참새는 닭이나 오리와는 달리 한 발 한 발 걷지 못하고 반드시 두발을 모아서 한 걸음씩 뛴다고 하는데, 그 걸음마다에는 행운과 불운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첫걸음은 ‘횡재수’고, 두 번째 걸음은 ‘관운’, 세 번째 걸음은 ‘여복’, 네 번째 걸음은 ‘건강’ 등 열 두 걸음까지는 행운에 해당하지만, 열 세 걸음을 뛰면 지금까지의 모든 행운이 사라지고 ‘곱절의 악운’이 겹친다는 것이다. 이 민담에서 보듯 우리 교육은 지금까지 행운의 열 두 걸음까지 차분하게 잘 걸어온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교육환경 등 하드웨어적 측면은 행운의 ‘열 두 걸음’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열 세 걸음’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첫째, 최근 회자되고 있는 평등교육에 대한 걱정이다. 평등교육이란 교육기회의 평등일 때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학습 수준이나 능력에까지 평등성을 지켜내자는 말은 교육이 가지는 기본적 신념을 왜곡시키기에 아주 위험한 ‘열 세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전북에서도 수준별 수업 금지에 따른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개인차에 따른 능력을 충분히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교육적 소임을 다했다고 자부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반복적인 지도와 교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최근 지나치게 인권 중심의 교육이 강조됨으로써 교사의 교육적 역할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 또한 ‘열 세 걸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권리만 강조되고 책임이 소홀히 되는 교육은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될 덧이다. 인권을 소중하게 하자는 이야기는 백 번 옳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동시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도 학생의 인권 이상으로 중요한 교육적 지향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조직의 구성원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면 직위와 직책에 따른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직위와 직책에 맞는 역할과 책임,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교육계에서는 ‘행복한 교육’을 경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땅히 우리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주체를 학생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생이 행복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교사도, 교감 및 교장 등 관리자도 행복해야 한다. 모든 권한을 내려놓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그것 또한 ‘열 세 걸음’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 교육계에 만연한 구성원의 적당주의, 복지부동은 결코 행복한 교육이 될 수 없다. 넷째, 교단의 이질화 또한 걱정이다.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 교육 현장에는 단기적, 임시적 처방에 따라 도입된 사업이 너무나 많다. 그에 따라 그 구성원들도 아주 다양하다. 정규교사, 기간제교사, 원어민 보조강사, 각 프로그램별 보조강사, 스포츠순회강사 등 셀 수 없이 많다. 당장의 수요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제도라고 말하겠지만, 이는 본의 아니게 교단의 이질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교육현장을 활성화시키는 ‘열 두 걸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근무여건과 보수,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불만으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열 세 걸음’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좀 더 장기적이고 교육적 관점에서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동질적 구성으로 포용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우리 교육현장의 ‘열 세 걸음’은 적지 않다고 본다. 교육은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우리 교육이 이념과 정치의 논리와 휘둘리고 있는 것은 불행의 곱절로 배가 시키는 ‘열 세 걸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기태 전북도의회 교육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