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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와 국민건강보험

작성자 :
정진숙
날짜 :
2013-12-13

아이를 키우면서 아픈 아이가 병원 문턱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던 경험이 한번 씩 있을 것 같다.

병원은 아픈 주사와 쓴 약이 있기에 가기 싫은 곳으로 인식돼 있어 병원에 한번 데려가려면 회유를 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이 아파서 혹은 무서워서 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 아파서 죽을 것 같아도 갈 수 없는 곳이 된다면 어떨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에 나오는 미국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나라이다.

일을 하던 중 손가락 두 개가 사고로 잘렸다. 하지만 비싼 접합수술 비용 때문에 잘린 손가락을 모두 치료할 수 없는 노동자는 저렴한 한 쪽 손가락만 접합 수술을 한다. 치아가 아파도 약국에서 파는 마취약을 바르거나 진통제로 견딜 수 밖에 없고, 치주염을 앓던 어린이가 치주염의 염증이 뇌로 전이 돼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미국의 건강보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많은 대통령들이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실패의 뒷 면에는 자본이 숨어있었다. 대 자본들은 많은 돈을 들여 정치인에게 로비를 하고 정치인은 국민이 아니라 이익집단의 편에 서 일을 했다. 식코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조금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국내 의료기관의 95% 이상이 민간자본으로 설립돼 운영되고 있는 민간 병원이다. 공공병원의 비율은 열악한 건강보험의 대명사인 미국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잘 돼 있는 복지를 손에 꼽으면 건강보험이 꼭 들어간다. 민간이 주도하는 의료산업에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가 더해진 것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원격의료와 메디텔(Medicine+hotel)의 허용 방침이 시작이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전액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종합하면 국민의 건강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메디텔이 허용되면 민간보험회사들이 병원과 직접 계약해 환자를 알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병원은 자신들과 계약한 특정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만을 선택적으로 진료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이 무너지는 것은 명약관화다. 국민건강보험이 무너지면 국민들은 비싼 민간보험에 들어야 한다. 민간보험이 없는 저소득층은 적절한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터다.

2013년 5월 29일 진주의료원이 폐업했다. 우리나라의 얼마 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 중 하나가 문을 닫은 것이다. 진주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을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했다. 혹시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계가 미국의 식코처럼 되는 전주곡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예감마저 든다.

한번 무너진 국민건강보험을 되돌리는 것은 지금의 체계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은 50여년 만에 건강보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환자 보호 및 건강보험료 적정 부담법’(PPACA)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오바마 케어로 인해 미국 연방정부는 업무정지 상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복잡한 시행내용으로 의사들조차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눈과 귀를 막고 길이 아닌 곳을 향하는 정부의 정책은 지금이라도 되돌려져야 한다.

본래 약속했던 공약을 지키기 위한 정책에 힘을 쏟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며 가장 시급한 일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정진숙 <전라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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