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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국민의 붉은 핏물이 흐른다

작성자 :
장학수
날짜 :
2015-04-14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1961년,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세력이 반공, 친미, 경제재건을 명분으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정변을 일으킨 군인들은 헌법의 효력을 중단시키고,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구성하여 2년6개월 동안 군인들이 국가를 통치했다. 이들은 반공을 구호로 내걸고 경제재건과 정치안정 및 사회개혁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 국회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마련하여 이를 국민투표에 부쳐 확정하였고 쿠데타의 수장인 박정희는 사회가 안정되면 다시 군대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군복을 벗더니 민주 공화당을 창당하여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1963년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윤보선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바야흐로 제3공화국이 탄생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1945년 8.15일 일본 식민지 해방, 1950년 6.25전쟁발발, 1953년 7.28일 휴전 후, 춥고 배고픈 가난은 이어져갔다. 외국의 원조와 차관에만 의존한 1960년대 초 한국경제는 한마디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었다. 공장을 지으려 해도 돈과 기술이 없어서 지을 수가 없었으며, 국민실업률은 무려 40%에 육박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79달러로 필리핀(170달러)과 태국(260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기술진흥 등. 정유·비료·화학·전기기계 등의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려했지만 투자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난관에 봉착하였다. 군사정권은 재원확보를 위해 급기야 일제36년간 수탈당했던 한국인의 개인재산권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기타 징병, 징용 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포괄적 배상등을 논의한 한일회담을 1961년 5.16쿠데타 이후 서둘러 진행하였고 그 결과 1965년 6월22일, 3억달러 무상제공과 2억달러 재정차관, 3억달러 상업차관 제공이라는 졸렬한 협상결과의 우를 범한다. 같은시기, 1963년 박 정권은 서독에 차관을 요청하였으나 전쟁과 쿠데타로 얼룩진 우리나라에 보증을 서줄 은행과 국가를 찾지 못하다가 간호사와 광부를 3년간 파견하는 노동력을 담보조건으로 1억5,000마르크(4,000만불 상당)의 차관을 제공받게 되었다. 간호사와 광부들의 노동력 파견으로 63년부터 78년까지 연간 5,000만불의 외화벌이가 가능하였으나 우리의 꽃 같은 젊은이들이 캄캄한 탄광에서 죽어가거나 실명과 폐병등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또 같은 시기인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외화벌이를 위해 박정권은 연간병력 총 324,864명의 푸르디 푸른 젊은이들을 열사의 나라 베트남의 전쟁터 사지로 보내야만 했고 그로인해 총67억달러(1964년 국가수출 총액:1억달러)의 외화벌이를 하였지만 우리는 5,099명의 꽃같은 젊은이들을 남의나라 전쟁에 희생시켜야 했으며 4명이 실종당하고 94,000명이 부상이나 고엽제등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시달리는 쓰디 쓴 댓가를 지불하여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의 붉은 피와 땀의 댓가로 만들어진 외화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고 포항제철을 만들고 한국전력을 만들며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을 하였고 1998년 IMF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 전 국민이 동참하여 만들어진 많은 기금과 세금들이 기업에 지원되면서 삼성그룹과 현대그룹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되면서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포함되는 쾌거를 일구어 냈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두고 세계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한강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가에 헌신한 국민들의 선홍빛 붉은 핏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4월16일이면 세월호 사고 1주년을 맞이한다. 1년전, 우리는 TV생중계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하여 314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구조받지 못하고 차디찬 어름같은 바다속으로 빨려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중에는 피워보지도 못한 단원고 어린학생들이 250명이나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피워보지도 못한 우리의 꽃망울들! 사실 지금까지도 정확한 희생자 수가 몇 명인지도 모른다. 사고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한 탑승자는 몇 명이고 사망자는 몇 명인지? 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밝혀진 진실은 하나도 없고 각종 가설만 돌아다닌다. 1960년대와 70년대 국민들의 붉은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경제대국에서 50년이 지난 지금, 국가를 위해 헌신한 314명의 후손들이 죽어갈 때까지 몇 시간동안 국가와 대통령이 TV로 구경만 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세월호를 인양하여 진상규명을 밝혀달라는 것인데 왜 세월호 인양은 하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은 보상만 언론에 흘리고 야단법석인가? 세월호희생자 유가족들 욕하지 마라. 다음 희생자는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할 줄 알아야하고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거늘 왜 국가는 314명의 국민이 죽어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진상규명은 하지 않는가? 국가는 대답하라! 밝히지 못하는 것인가? 밝히지 않는 것인가? 국민을 배신한 국가를 버리고 떠나겠다고 외친 희생자 유가족의 울부짖는 목소리만이 귓전을 멤돈다.
누리집 담당자
의정홍보담당관 함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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