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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과 국정교과서
작성자 :
박재완
날짜 :
2015-09-18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벗어나 ‘빛을 되찾은’격동의 해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은 이제 어르신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분들이 고희를 맞이할 정도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제 식민지배 역사를 미화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하다.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근대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단적인 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자유당정권과 그 이후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독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왜곡된 역사인식이 특정 소수집단만이 공유하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얼마 전 교육부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한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간 여당 대표를 비롯한 보수진영의 주요 인사들이 군불을 피워오다가 마침내 정부가 나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역사학계와 교수사회에서는 벌써부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고 정부와 새누리당도 한국사 국정교과서 전환이 정치적 부담을 수반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쯤은 십분 예상했을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가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국정 후반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파다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정교과서 움직임은 사실상 정치적인 모험에 가깝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 전환이‘국민대통합’과 ‘객관적인 역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대통합은 실상 획일화된 역사의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국가가 정하는 하나의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체화한다는 게 국민대통합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역사는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역사는 해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각기 다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역사적인 논쟁도 동일한 역사적 사실과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역사가 과거지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는 것도 역사를 둘러싼 각기 다른 해석과 논쟁의 여지가 언제든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역사에서 객관과 중립이란 없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전환을 시도하려는 저의는 명쾌하다.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장악함으로써 보수정권의 탄탄대로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권력집단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역사를 기술하고 편찬하며 개편한다는 것은 세입자가 집주인 허락도 없이 집을 통째로 뜯어 고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이는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광복7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뜻깊은 70주년을 맞아 진지하게 역사를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일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70주년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먹칠을 하는 격이다. 안타까움을 넘어 슬픈 일이다. 해방둥이들이 고희를 맞을 때까지 역사를 선점하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현장의 역사교사들이 강력하게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각계의 성명서도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보수진영의 역사학자들도 국정교과서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다고 한다. 예상컨대, 정부의 국정교과서 전환 시도는 도루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반드시 막아내야 하는 시도다. 그렇지 않으면 광복 100주년을 맞는 2045년에도, 우리는 여전히 역사가 권력의 하녀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풍경을 목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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