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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의 깃발
작성자 :
이해숙
날짜 :
2016-02-16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서울과 경기, 광주지역 교육감들이 하나 둘 빚을 내서 예산을 세워버렸다. 어린이집 운영자와 보육교사, 학부모의 집요한 예산편성 요구에 직면한 교육감들이 현실과 타협하고 만 것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그렇게 혼자 남았다.
100여 일, 싸움은 몰릴 대로 몰렸다.
청와대와 교육부의 악의적인 거짓말을 언론들은 가감 없이 기관지처럼 실어 날랐고, 교육청 앞마당엔 상복을 입은 어린이집 측 사람들이 상여를 앞에 두고 연일 시위를 벌였고, 국민감사를 청원하고 감사원 감사를 촉구했다.
급기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내려와 긴급 회동을 하고, 향후 누리과정 재정 분담 원칙을 올바르게 세우는 데 필요한 입법, 재정, 정치투쟁에 앞장서겠다는 약속으로 긴 싸움을 풀었으나, 헌법학자 김승환의 법을 지키려는 원칙과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미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 후 지방채 발행 입법에 여야가 합의함으로 교육청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싸움은 지난해처럼 또다시 시작되고 있다.
누리과정은 대통령 공약으로 국고에서 해결해야 함에도 정부가 세수 감소 등을 이유로 지방교육재정에 넘기는 과정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지방교육재정 수입의 대부분은 내국세의 20.27%인 중앙정부 교부금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지원금이고, 또 이 수입금의 대부분은 인건비와 같은 경직성 경비여서, 지방교육청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원은 대개 전체 예산의 10% 내외 일 뿐이다.
이 예산을 쪼개서 무상급식을 비롯한 일상적 교육활동에 들어가는 경비를 충당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 예산조차 줄여 누리과정에 쓰라고 강제하고 지방채를 발행해 충당하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법을 어겨가며 시행된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시·도교육청 부채는 2012년 9조원에서 2015년 17조원으로 급증했고, 지난 4년 동안 지방채를 갚기 위해 학교 운영비와 교육환경 개선비 등을 삭감하고 있다.
동생들 누리과정비용을 지원하느라 형·누나의 학교 교육비가 빠져나가고 있고 한여름 교실에서 에어컨 대신 선풍기 한 대로 버텨야 할 형편인 것이다.
형편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입으로 한 대국민 약속을 잊어버린 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현수막을 내걸어 국민을 속이고 있고, 예산을 세우지 않으면 감사를 하겠다며 공공연하게 압력을 가하고, 긴급하게 세운 3,000억 원도 누리과정 예산을 세운 곳만 지원한다고 초등학생 같은 편 가르기로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2016년,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예산만 세워주면, 상여를 메고 청와대로 향할 것 같던 어린이집 사람들도, 입이 닫힌 시민사회단체들도, ‘우선 예산을 세워놓고 그다음에 싸워보자’ 라고 얼렀던 국회의원들도 싸움의 현장에서 사라졌다.
또다시 김승환 교육감만 홀로 남았다.
교육 재정을 지키려는 싸움이다.
교육 자치를 지키려는 싸움이다.
법을 지키려는 싸움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싸움이다.
모두가 함께해도 쉽지 않은 그 거친 길에, 김승환은 홀로 찢겨진 깃발을 날리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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