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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190시간
작성자 :
이해숙
날짜 :
2016-03-03
끝내서는 안 될 싸움, 필리버스터는 끝이 났다.
시간과 결과가 정해진 저항은, 합법적이라는 외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나버린 약속’처럼 무기력했다.
선거구 획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견뎌내기엔 야당 의석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총선 승리의 바탕이 되는 선거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공정 언론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로도 그 궁색함을 벗어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일 185시간의 필리버스터는 충분히 감동이었다.
첫 주자 김광진 의원, 눈물의 은수미 의원, 그 은수미를 배려하던 정의당 박원석 의원, 11시간 39분을 이어가던 정청래 의원, ‘사이다 필리버스터’의 신경민 의원,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강기정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참여했던 모든 의원들.
그들은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민주주의를 지켰고, 그 진심은 시민들을 깨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1964년 김대중’을 보았다.
그들은 야당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메시지를 온 몸으로 전달했다.
막말과 고성, 몸싸움만으로 기억되던 국회를 ‘말이 되는 국회’로 새롭게 기억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치 볼모지 대한민국 국회에서 발신된 신선한 정치적 시도에 시민들은 벅찬 희열과 감동을 얻었다.
존재감 제로 국회방송 시청률이 20배가 늘며 ‘마국텔’로 변신했고, 국회 인터넷 접속자 수가 하루 평균 6,000 건에서 10만 건을 돌파했다. 또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던 ‘팩트TV’ 접속자가 180만 명을 넘었다. 이 모든게 정치혁명의 시작이다.
감동은 시민들이 그동안 손가락질하고 외면했던 국회로 출근하면서 시작했다. 시민들은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듣기 위해 국회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감동과 희열은 야당 의원들에 대한 후원과 지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경험하는 국민들의 지지였다.
이렇게 야당의 진심이 담긴 필리버스터는 권력의 불합리와 모순을 뛰어넘어,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야당의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또 다른 장르로 다가 왔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야당 의원들의 분투는 정치의 본령이 어디에 있는 지를 명확하게 일깨운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한국 정치사에 2016년은 영원히 새겨 둘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필리버스터는 멈췄고, 테러방지법은 통과될 것이다.
그동안 ‘빨갱이와 종북’이었던 그들의 언어는 ‘테러리스트’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싸우는 세월호 유가족들, 위태롭게 소녀상을 지키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대학생들, 5차 민중 총궐기를 준비 중인 노동자들, 의식 불명인 백남기씨를 위해 걸었던 도보순례단들이,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제 테러리스트로 왜곡될 일만 남았다.
이제 국민들의 휴대폰은 국정원이 무차별 듣게 될 것이며, 우리들의 카톡방도 국정원이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며, 우리들이 주고받는 은행거래도 국정원이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가족들의 거실 한담도 국정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악몽이 현실화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있는 시민 행동이다.
이제 다시, 투표를 통해 우리들의 ‘합법적 저항’인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야 한다.
‘투표’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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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홍보담당관 함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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