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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 정동영의 진보
작성자 :
이해숙
날짜 :
2016-02-22
좌고우면하던 정동영은 결국 국민의 당에 틀을 잡았다. 김대중과 김종필, 노무현과 정몽준이 했던 선거 연대와 같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전제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세 사람이 연대 할 당시 힘의 관계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충분하게 바탕에 두고 보조적 역량이 필요한 단계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정동영과 안철수의 연대는 김종필이 김대중을 끌어들이는 형국이며, 정몽준이 노무현을 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르는가?
환자가 목발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목발이 환자를 필요로 하는 모습이다.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짠 판의 중심에 보수의 도움은 전략적 외연의 확장이지만, 보수주의자들로 짜여진 중심에 진보가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진보를 가장한 전향’에 불과하다. 오히려 안철수의 손을 잡은 정동영의 모습에서 이명박과 박근혜의 들러리를 자임했던 이재오와 김문수의 모습이 오버랩 될 뿐이다. 이재오와 김문수, 누구도 더 이상 그들에게 진보의 이름을 씌우지 않는다. 또 누구도 그들이 우리 사회의 대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누구도 그들이 우리 사회에 대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념을 버린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인 것이다.
발에 돌이 묶인 채 흔들리는 뱃전에서 죽음을 대하던 김대중의 떨리는 눈빛을 기억해보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신념을 떠올려보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신념을 파는 사람과, 신념으로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만큼이나 선명하다. 국민의 당으로 들어가는 세 가지 이유인 호남정치 부활, 개성공단 복원, 정권교체라는 목표도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첫째, 호남정치의 부활은 국민의 당에서는 불가능하다. 호남정치의 본질은 ‘진보성에 기반 한 야당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당은 태생부터 야당성을 포기한 채 새누리당 2중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을 부정하고, 이승만을 국부로 인정하고, 박근혜정부의 원샷법을 지원하고, 박근혜의 관제 서명을 지지하는 모습에서 호남정치 복원을 떠올린다는 것은,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설명하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 개성공단 부활은 국민의 당 정책과 배치된다. 개성공단은 햇볕정책의 결과물이며, 정동영도 그 햇볕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노무현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으며, ‘대륙으로 가는 길’을 자신의 모토로 삼아 왔다. 그럼에도 정치적 지향과 달리, 공공연하게 햇볕정책 실패를 선언한 국민의 당에서 개성공단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세 번째, 정권교체는 국민의 당으로는 불가능하다. 정권교체가 아니고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한 정권교체’라야 타당하다. 오로지 대선주자의 꿈을 위해 ‘범야권 전략협의체’ 구성 제안도 거부하는 안철수의 고집으로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 승리로 귀결 될 가능성이 커졌다. 총선 패배는 정권교체 가능성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정동영은 몰랐을까?
진보는 입으로 외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반성문을 낭독 한 이후 ‘진보적 강력 야당’ 건설이라는 그 모든 주장들과 노동 현장과 세월호 현장을 찾던 그 모든 움직임들이 결국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정치인의 레토릭’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지금 전북도민의 열망은 오직 하나, ‘진보적인 강력한 야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승리하고 새누리당을 누르고 정권교체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 열망에 등 돌리는 그 누구도, 호남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매화는 추위에 향기를 팔지 않고, 봉황은 오동이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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