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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의 흔적, 교차투표
작성자 :
이해숙
날짜 :
2016-04-14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거리엔 후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려는 선거유세차량의 노랫소리와 운동원들의 율동이 바람에 꽃잎처럼 나부끼지만, 정작 유권자들의 표정엔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야누스의 페이소스를 드러내는 듯하다.
선거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을 통한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과정으로 축제의 의미를 가지고, 또 하나는 한 사회의 미래를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선택하는 정치행위의 의미가 있다.
투표라는 약속되지 않은 행위를 통해 함께 사는 구성원들의 현실의지를 확인하기도 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반영하기도 하고, 그 외연의 확장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기도 하는 사회학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처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진행되는 경우에는 내년 대선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여느 때보다 그 중요함이 더해지고 있다.
선거구 조정을 통해 결정된 호남의 의석수는 28석, 전체 지역구 252곳의 11%에 불과하지만, 서울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과 내년 대선의 야당후보 선택의 거점으로의 비중으로 비춰볼 때, 이번 국회의원 선거만큼 호남이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현직 대통령이 선거개입으로 느껴질 만한 깜짝 방문도 있었고, 막말로 얼룩진 새누리당 대표의 방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의미의 선거국면에서 전북도민들은 지금 새로운 패턴의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껏 치러왔던 대부분 선거의 쟁점은 정부여당을 대상으로 한 정권 심판론과 정권심판을 해 낼 수 있는 적임자의 선택이었지만, 이번 선거의 쟁점은 정부여당이 쟁점에서 사라지고 갈라진 야당끼리 겨루는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파탄을 일으킨 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하자고 하고, 국민의 당은 ‘제1야당을 심판’하자고 한다.
도민들은 흔들리고 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이다.
심판의 대상, 교체의 대상인 새누리당이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김대중의 번호, 노무현의 번호인 2번에 대한 관성이, 3번과의 경쟁으로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전주라는 하나의 지역에 선거구도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 것도 이유가 됐다.
전주갑과 전주병은 야당과 야당의 싸움으로 구도가 형성되었지만, 전주을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이 선거 이후 대선을 앞두고 통합을 할 것이라는 예측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 치열한 경쟁을 일으킨 원인이 되고 있지만, 전주을의 경우엔 두 야당의 싸움으로 새누리당에 의석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권자들의 ‘교차투표’의지는 이러한 고민의 지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당을 지지하는 응답자 중 국민의 당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응답자 중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보다 훨씬 낮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당은 국민의 당을 선택하지만, 후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를 선택하는 형태인 것이다.
결국 ‘교차투표’는 소수이면서도 ‘가치투표’를 통해 정권교체의 의지를 숨기지 않았던 호남의 투표행위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전통적으로 전략적 투표를 해왔던 전북도민들의 고심 흔적이 담긴 결과물인 셈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형태며, 투표로서 정치적 결정을 표현한다.
이제 우리는 투표해야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드러날지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보듬어 안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도민들의 고심 흔적이 이번 총선의 의미를 현실화하고, 다가올 대통령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힐 수 있길 희망할 뿐이다.
이제 결정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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