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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향한 칼날인가
작성자 :
이해숙
날짜 :
2016-06-14
지난 9일, 전라북도의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김승환 교육감이 전북어린이집연합회원들에게 멱살잡이를 당하고, 김태규 부교육감이 짓밟히고 손바닥이 찢기는 등 10여명이 다쳤다.
슬프고, 안타깝고,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이 슬픈 건 그들도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 저출산의 늪에 빠져들면서 차츰 줄어드는 원아들로 어린이집들은 생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박근혜대통령의 누리과정 지원 약속은 새로운 기회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원은 외면한 채 시도교육청에 예산을 떠넘김으로써 예산 편성 여부를 놓고 갈등을 촉발했다. 이 때문에 불안감은 확산됐고, 마침내 교육청 추경예산에서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맞이했을 절박감을 감안하면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안타까운 건 그들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지난 한 해만 무려 10조 7,164억 원의 지방 교육채를 발행했다. 그로인해 현재 총 17조 1,013억 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또 별도의 재정 수입원이 없는 시도 교육청은 정부로부터 교부금이 교부되지 않을경우 사실상 파산을 모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기본법상 유아교육에 편입된 누리과정 무상교육·보육사업은 정부 부담임에도 불구하고 지방교육재정에 책임을 전가하는 바람에 발생했다.
그동안 빚이라도 내서 어린이집들을 지원해왔지만, 정규 학교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교육청으로서는 더 이상은 누리과정 지원은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됐다.
상황이 이런 줄 알면서도 그들이 교육감을 상대로 멱살드잡이를 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목표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오인한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2년 넘게 아스팔트 위에서 싸움을 벌여도,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한 자치단체장들이 단식 농성을 해도, 흐트러짐 없는 박근혜정부의 고집 불통을 그들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교육감을 국민감사 청원하고 상여를 메고 농성하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기억들이 그들에게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분노케 하는 건 그 자리에 가해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집연합회에게 전라북도교육청이 가해자처럼 보여지는 착시 현상을 제공함으로 결국 피해자끼리 싸우도록 한 것은 박근혜정부다.
어버이연합을 내세워 세월호 유가족과 싸우게 하고, 어머니연합을 앞세워 위안부할머니들과 싸우게 하고, 정규직으로 하여금 비정규직과 싸우게 하고, 대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생들과 싸우게 하고, 밀양으로 하여금 가덕도와 싸우게 하고, 전북과 전남이 싸우게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자신들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양한 사회 갈등의 이면에는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중앙에 앉아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피해자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권력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결국 피해자들끼리 목숨을 건 검투사들의 싸움만큼이나 비참한 일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이며, 누구와 하나 되어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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