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의회, 함께 만드는 전북전북특별자치도의회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도도한 분노의 민심은 거대한 노도(怒濤)가 되어 광화문에 밀려들었다. 그러나 민중은 화내지 않았다. 분노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녹이고 참혹(慘酷)은 코메디로 승화시켰다. 두 눈 부릅 뜬 충무공도, 슬기롭고 근엄한 세종대왕도 군중 속으로 몰입 되었다. 나는 현장에서 충무공과 세종대왕을 생각했다. 국난에 온몸을 던졌으나 성군을 만나지 못해 제대로 인정도 못 받은 고단한 성웅이었다. 절망의 순간에도 백성을 사랑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만백성의 가슴 속에 담겼다. 또한 백성을 너무나 사랑한 한 임금은 당신의 고난도 멀리한 채 백성이 사용하기 편한 글을 만들고 책을 지었다. 하필이면 오늘 엄중하고 위대한 곳에 천박한 박근혜가 있는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밀려드는 군중들은 자신의 안전보다 옆 사람 안전에 더 신경을 썼다. 유모차가 나오면 빙 둘러 방어벽을 치고, 휠체어가 나오면 모두 도우미가 되었다. 어머니 손을 잡은 꼬맹이는 이웃집 아저씨의 친절에 신이 났고 팔순 노인은 장엄한 대한민국을 보았다. 제임스 스콧은 『우리 모두 아나키스트다』에서 오늘의 현상을 이렇게 예견 하였다.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일단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나면 일종의 압축 상징으로 떠돌아다니거나 전파되며, 우리가 대단히 주의 깊게 자세를 갖지 않을 때는 그 사건이 당대에 체험 되었던 방식에 중대한 불의를 자행하는 거짓된 논리와 질서에 물들게 된다(p204).” 우리가 주의 깊게 자세를 갖는 것은 오롯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100만 민중의 함성과 전국 방방곡곡에서, 해외에서 외치는 함성은 오로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하나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면 군자다운 임금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박근혜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아니기에 물러가라 하는 것이다. 지금 물라가라. 물라가라 하지 않는가. 국민들이...! 그런데, 벌써 제임스 스콧의 말대로 거짓 된 논리와 질서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100만 민중의 함성을 아수라로 보는 자들은 ‘노무현이 부패로 자살했다’고 하고 ‘물러가라 하는 자에게 대통령 선거운동 한다고’ 비난 한다. 틈만 나면 양의 목숨을 훔치려는 하이에나의 날카로운 이빨은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도사리고 있다. 민중의 분노는 보통 때 수위를 넘어설 때, 일상정치를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모든 매개 변수를 위협하는 위기 상황일 때, 소득 불평등에 의한 양극화 사회에서 뜻 있는 정의가 폭발하며 닥쳐온다. 절박한 위기에서 거리로 내몰린 국민들 마음엔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대통령이 저 모양’이라는 배신감과 자괴감이 응어리져 있다. 오천만 국민의 분노에 의하여 가진 자들의 권력은 위기 상황으로 심화되고 비정상적인 구도는 민중의 함성에 의하여 붕괴된다. 그 얼마나 피맺힌 나날이었던가. 4.19. 5,18. 6,10 어떻게 만든 나라인가. 진실의 함성은 여전히 응집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박근혜가 진실을 감출수록 좋고, 청와대에 오래 머물수록 좋을 수도 있다. 어차피 송두리째 벗길 것이니 조금 버틴다고 조금 미룬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우리 모두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명예로운 ‘시민혁명’은 지금 이렇게 시작하여 꽃길을 향하여 가고 있다. <양용모 전라북도의회 의원> ※아나키스트(anarchist)는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려는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2016.11.17 새전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