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의회, 함께 만드는 전북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이른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농로를 따라 우사에 도착한다. 밥 달라고 보채는 암소, 수소, 송아지 밥을 종류별로 주고나면, 잠시 나에게는 약 20분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관리사에서 커피를 한 잔 타서 손에 들고는, 우사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계획하는, 나름 소중한 시간이다. 아직은 겨울이 다 가지 않은 이른 봄 아침이지만, 소맷자락에 감기우는 공기가 약간은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으며, 문득 야생으로 자란 목련에 눈길이 간다. 아차, 봄이다 싶어 매화나무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핀 이름 모를 들풀에도 눈이 간다. 꽃을 피우기 위해 작은 몸부림으로 망울이 맺힌 아주 익숙한 경이로움을 마주할 때도 있다. 운 좋게 망울위에 이슬이라도 한 방울 맺혀 있으면 배시시 미소가 난다. 나는 시골의 이런 일상이 좋다. 천석고황(泉石膏?)은 아니지만, 농촌살이에 익숙하고 때론 불편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이런 살이를 사랑한다. 22년째 농촌살이 하면서 봄은 나에겐 한해의 희망 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아내와 함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올 삼월은 사뭇 다르다.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면 대개 세상을 살아가는 규칙이 있고, 도리가 있음은 안다. 더욱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 혜안이 요구 된다. 안개 속을 걷는 것 같고, 쉴 세 없이 날리는 눈 속을 걷는 것 같고, 어지러운 꿈을 꾸다 깨어난 것 같은 몽롱한 시간과 공간이다. 왜일까? 아마도 작년 하반기부터, 아니 상반기부터 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이해 못할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더니, 결국 국정농단이라고 밝혀진 일. 요상한 댁내와 한참 모자란 지도자(우리가 잘 못한 선택인지 아니면 조작을 했는지 분명치는 않지만)가 사익 추구를 위해, 국가를 우습게 만들고 국민을 부끄럽게 만든 일이 내게는 참 혼란스럽다.
결국 국민은 항의의 표시로 촛불을 들었고,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더 크게 일어나 횃불이 되고 들불이 되어 국회를 움직이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탄핵했다.
대통령은 나라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국민은 자신들의 분노를 절제하여 표현하였고, 이것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혁명을 이루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비로소 안개가 걷히고 앞길이 보이며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또 다른 우려는, 대통령 유고 사태로 조기 대선이 진행되고 국민들의 정권교체 요구는 거세지며. 짧은 후보 검증 기간으로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까, 혹 좋은 기회라고 여긴 분들의 과욕으로 모처럼의 기회가 탁류로 변질되진 않을까?
붉은 닭의 해인 올 삼월은 나라의 최상층 권부의 혼란으로 이지경이 되었으니, 옛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오두”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오두(五?)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 가지의 해충이라는 뜻이다. 어떠한 좋은 재목(材木)도 좀이 먹으면 쓸모가 없게 된다. 어떠한 진귀한 책도 좀이 슬어버리면 읽을 수가 없게 된다. 나라에도 좀벌레는 있다. 한비(韓非)는 학자. 논객. 협사(俠士). 측근(側近). 상공인을 나라의 좀 오두라 고 지적 하였다. 물론 세상이 바뀌어 옛 고전이 현대와 부합하지는 않을 지라도,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은 한 번쯤 곰곰이 되새겨 볼 말이다. 힘써 일하지 않고, 권력자에 빌붙어서, 논리만 가득하고, 자기 논리에 빠져서, 부를 축적하여 헛군데 낭비하고, 서민들에게 위세를 부리는 현세(現世)의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그러면 지방정치를 하는 나는 어떻게 하고, 어떤 위치에 있나! 땅바닥에 엎드려 핀 작은 꽃잎위에 맺힌 이슬에 나를 비추어볼 일이다. 올 일 년의 계획은 나를 돌아보는 것으로 하여야겠다.
2017년3월29일 새전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