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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벌린이라는 영국의 사상가는 옥스퍼드를 나와 올 소올즈 칼리지, 하버드와 프리스턴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그의 명작 중에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고슴도치와 여우의 생태적 습성을 비교하여 우화화한 글인데 매우 재미있다.
여우는 꾀가 많아 교활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수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반면 고슴도치는 오로지 막강한 가시방패 갑옷 하나로 무장하고 과묵하게 삶을 영위한다.
그렇다면 지략이 뛰어난 여우와 우직하게 살아가는 고슴도치의 대결에서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여우는 고슴도치가 방심한 틈을 타서 단번에 치명상을 입힐 지략을 세워 공략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빗나간다. 위험을 느낀 고슴도치가 여우의 기습을 감지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말아 방어망을 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우는 고슴도치에 코가 찔려 혼비백산 물러나고 만다. 결국, 여우는 계획을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고 고슴도치는 눈을 반짝이며 으스댄다. 일상적 상식으로는 항상 지혜와 전략이 무쌍한 여우의 승리를 예상하지만, 승리는 언제나 고슴도치다.
이사야 벌린의 이 우화를 통해서 역사적인 인물들을 분류해 봤는데 프로이드, 다윈, 마르크스 등은 고슴도치에 비유되고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등을 여우에 비유했다.
등식을 성립하는 논거의 핵심은 여간한 통독으로는 난해하여 해독하기 어려우나 읽는 중의 짐작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늘날의 국제적 인사들이 첨예하게 다투는 모습들을 비교하면 재미난 이야기가 될 법하다.
촛불 혁명으로 새롭게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과 예상을 깨고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는 어떤 부류에 해당할까. 아마도 졸렬한 나의 소견으로는 우직하게 오직 나라의 안위와 적폐청산을 안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고슴도치에 비유해 본다. 반면 온갖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난어로 세계의 언론에 가십거리를 양산하고 있는 트럼프는 여우과에 속하지 않나 짐작해 본다.
트럼프가 한국과 더불어 일본 중국도 방문했다. 트럼프의 이번 동북아 순방은 여러 가지 목적을 추구하며 에어포스원에 올랐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체류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연설을 마치 대단한 선심성처럼 포장한 것은 교활한 여우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한미동맹, 대북정책 공조, 국방 방위산업, 경제 통상 투자 등을 망라한 7개 항의 공동언론발표문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올해부터 2021년까지 748억 달러에 이르는 대미 투자와 구매를 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한 톤을 낮추고, 한, 미 FTA에 대한 민감한 표현을 피하면서 무기판매와 대미 투자 등 실속을 챙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만 알고 있다. 여우는 언제나 공격적이지만 고슴도치는 방어적이다. 여우는 지략을 정비하고 전략을 자주 바꾸어 줄기차게 공격을 하지만 고슴도치는 오직 한 가지 방어 전략만을 구상한다.
우리도 이럴 즈음 아주 단순하게 고슴도치의 전략으로 막아내는 것은 어떨까.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한 일에 가장 현명한 판단과 대처는 많은 꾀보다는 정당하고 정직하며 우직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불리하면 몸을 말아 버리는 고슴도치 전략이 결국 승리할 수도 있다. 동북아의 안보는 단순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트럼프와 비슷한 여우 같은 아베도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고슴도치 같은 시진핑도 있기 때문이다.
△양용모 씨는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사랑을 훔쳐간 아몬나신> 외 수필집 5권을 냈다. 현재 전라북도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11.24 전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