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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의 등록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전국 등록외국인은 2000년 244,172명에 서 2015년 1,143,087명으로 468%나 증가했으며 전라북도 등록외국인도 2000년 7,245명에서 2015년 26,194명으로 360% 가파른 증가를 보였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외국인·이민자와 그 자녀수가 총 인구의 5.5% 수준인 270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외국인 10%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다문화인들이 생활하면서 겪는 웃픈이야기 한 대목이다. 시누이 결혼 날이었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차려 입고 미장원에 갔다. 미용사는 칼 같이 길쭉한 고대기를 들고 “앞머리 살려드릴까요? 죽여드릴까요?” 물었다. 그녀는 혼비백산하여 얼굴이 파래졌다. 그녀에게 들리는 말은 “죽여드릴까요” 뿐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브이띠또란은 “시부모에게 절을 하라”는 동서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동서가 절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녀에게 따라서 하라는 것 같은데 차마 절을 할 수가 없었다. 베트남에서는 죽은 사람에게만 절을 하기 때문이다. 눈치껏 절은 했지만, 속으론 어떤 불상사가 날지 겁을 먹었다.
‘다문화’라는 표현은 ‘단일문화’에 대한 대립개념으로 출발한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의 경제논리에 따른 ‘세계화’ 정책이 일반화되면서 야기된 값싼 노동력의 이동과 더불어 보편화되었다. 다문화주의가 처음으로 국가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된 것은 인도의 1950년 헌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도의 다문화주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흔히 캐나다와 호주의 사례가 거론되곤 한다.
정책으로서의 다문화주의는 복수의 시민권을 인정하여 이중국적이 허용되고 소수민 언어를 정책으로 지원한다. 소수민의 축제·축일 등을 정부가 지원하며, 학교·군대·사회 일반에서 전통적 복장이나 종교적 복장 등을 인정하는 것이다. 소수민의 문화, 특히 음악과 미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건국 초부터 제기되었던 영국계와 프랑스계 주민들의 갈등이 있었다. 캐나다인들의 분리운동을 차단하면서 그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1970년에 제정된 ‘공식어 법령(Official Language Act)’과 함께 활용된 다문화정책은 1982년 권리와 자유헌장을 통하여 인종차별 금지규정으로 발전하였고, 1988년에는 마침내 ‘다문화주의 법령(Multiculturalism Act)’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용광로 모델을 채택하면서 이민집단이 고유한 정체성 유지를 실질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던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모자이크’라 간주되었으며 모든 민족은 평등하다고 선언되었다.
다문화주의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었으며, 국가의 분열보다는 국민의 약 35%가 외국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구성된 캐나다라는 도덕적 공동체(moral community)의 통합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호주의 다문화주의 역시 모든 국민이 인종·문화·종교·언어·거주·지역·성·출생지 등에서 차별 없이 평등한 처우와 기회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호주의 다문화주의는 흔히 ‘위로부터 아래를 향한 이념과 정책’을 특징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으로 유지되던 민족적 동질성에 도전을 받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정부도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길을 묻는다. 결혼이민자, 이주노동자, 그 자녀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의 정체성과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향해 가야할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역지사지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해외 한인들의 다문화 경험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과 정주를 목적으로 이주하여 한국인으로 살고자 하는 타민족 집단에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경험적으로 말해준다. 우리의 부모와 선조들이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남미, 호주, 저 멀리 아프리카 오지에서 배우고 깨달은 값진 교훈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외모의 차이와 경제의 차이, 역사 경험과 문화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간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인격과 존엄성, 즉 인권을 지닌다는 점을 깨닫는 일이다. 정치적 동원 수단이나 갈등의 장으로 축소되어선 안 된다. 또한 문화적 차이를 주장하고 인정과 지원을 요구하는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나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설 것을 주장한다.
문화 간 경계를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들이 서로 스며들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는 사회, ‘동화’를 넘어 ‘문화적 모자이크’로, ‘문화적 모자이크’를 넘어 ‘새로운 문화적 모자이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 우리가 바라는 지향점이지 않을까?
2017.6.16 새전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