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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질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연대에 기초하여 재원을 조달하는 사회보험방식의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 있다. 중증질환과 같은 질병은 한번 발병할 경우 가족전체의 생계가 위협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가계경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직접 발표했다. 2022년까지 약 30조 6천억 원을 투입하여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비싼 항암제나 초음파 검사, 2-3인 병실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병원비를 전액 부담하던 건강보험 비급여에 대해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미용 성형 수술 같은 것을 빼고는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될 예정이다. 중병에 걸려 큰 병원비가 나와도 걱정이 없도록 고액 병원비에 대한 대책도 크게 강화된다.
그러나 병·의원들과 의사들은 저수가와 비급여 풍선효과로 맞대응했다. 정부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을 늘리면 병의원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진료항목이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늘려나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병원비는 줄어들지 않게 된다. 비급여 풍선효과가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을 실패하게 만든 원인이다. 저수가 체계에 기인한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비급여의 급여화’는 당장의 의료비 부담을 낮출 뿐만 아니라 민간보험료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민간보험시장에 영향을 준다. 암보험대상자의 경우 중증질환본인부담상한제를 실시하면 월 민간보험 납입료가 평균 약 9만원에서 5만원까지 낮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암보험료 뿐만 아니라 일반질병민간보험료까지도 감소했다.
스웨덴의 경우 병원에 입원해서 심장을 이식하든지, 맹장수술을 하든지, 감기로 입원했든지 하루에 110크로나(1만 4천원)를 낸다. 그리고 1년에 1100크로나(14만4000원)가 넘는 금액은 국가에서 납부한다. 병원비를 걱정해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다보니 대부분의 국민은 민간의료보험에 따로 가입해야한다. 국민 10명 중 9명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한 달 보험료로 평균 29만원을 낸다. 건강보험료가 가구당 10만원 정도이니 민간 의료보험료로 건강보험료의 3배를 내는 셈이다. 그럼에도 민간 의료보험에서 받는 혜택은 건강보험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유인즉 민간보험은 관리운영비 및 기업이윤 등 관리·운영상의 상당한 지출요인이 발생한다.
민간의료보험과 달리 건강보험은 2016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 납부액의 약 1.8배에 달하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즉 보험료로 10만원을 내면 18만원 가량의 혜택을 받았다. 심지어 건강보험료를 가장 많이 내는 상위 20% 고소득층도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 어린이,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저소득층은 낸 보험료의 14배, 심장병 환자는 8배에 달하는 혜택을 본다. 이는 본인 보험료, 기업부담 보험료, 국가 부담금이라는 3자부담원칙에 따른 것이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선택이다. ‘문재인 케어’가 완성되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5년 기준 63.4%에서 70% 수준까지 오를 전망이나 OECD 국가들의 건강보험 보장률 평균 80%보다 여전히 10% 정도 낮은 수준이다.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 비율의 경우 한국은 2017년 기준 36.8%로서 OECD 평균치인 20.3%와 비교하면 1.8배나 된다. 한국의 환자들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그만큼 더 높은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률 70%가 되어도 환자 부담 비율은 여전히 30% 정도로 높기 때문에 OECD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문재인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의사단체 등 모든 구성원들은 건강보험이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매년 30조가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진료·치료비의 30%와 민간보험료까지 매달 챙겨야 하는 국민들의 과도한 부담을 헤아려야 한다. 이런 논의들과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재인 케어의 추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의료계, 시민단체, 환자단체, 전문가로 이뤄진 문재인 케어 위원회 구성도 검토해 볼만 하다.
재원조달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먼저 국고지원 규모를 밝히고 약속을 지켜야 하며 동시에 진료비 지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비급여 풍선효과가 다시 나타나는지 면밀하게 감시해야 한다. 더불어 비급여 진료에 대한 동의 절차를 강화하고, 병원비 영수증 서식을 개선하여 환자가 모르는 비급여 진료가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가 있다. 의사단체가 자신의 이익이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충돌할 때 국민의 건강증진, 건강권 보장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과정에서 대안들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방안들을 도출하는데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의 길목에서 의사단체들이 전문가단체로 비춰질지 이익집단으로 비춰질지 기로에 서 있다.
2018.01.22 새전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