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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및 사적 승격 등 물론 문화재청 비롯 행정적·재정적 지원 이뤄지도록 도가 전면에 나서야” 영화에서 쓰이는 클리셰처럼 지금 여러분 앞에 타임머신이 놓여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신라 삼국통일의 현장으로 간다고 가정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 느끼는 통일에 대한 시각은 판이할 것이다. 유물도 누가 발굴하고 보존·기록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나 의미, 해석, 전시디자인 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유물발굴에 한국인 고고학자의 참여를 거의 허락하지 않았고, 고고학자를 양성하지도 않았다. 그들만의 식민지 발굴을 영원히 지속할 줄 알았겠지만, 패망하고 유물은 한국인들에게 남겨졌다. 하지만 발굴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전북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역사적 자산이 있다. 그중에서도 신라, 백제, 가야 유적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마한의 역사와 유적은 보물이 아닐 수 없다. 3세기 무렵의 상황을 전하는 『삼국지』에는 당시 한반도 중남부에는 55개 전후의 소국으로 구성된 마한과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진한 및 변한이 존재했다고 기록됐다. 마한(馬韓)의 ‘마’는 ‘마루’ 등의 음차로 맏형의 ‘맏’처럼 ‘으뜸’, ‘첫째’, ‘종주’라는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마한이 다른 두 한(진한, 변한)에 비해 출현 시기가 앞서고, 세력 또한 크다는 의미로 오늘날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를 포괄하는 넓은 세력권을 갖고 있었다. ‘마한’은 옹관고분·금동관 등의 유물을 통해 고대 찬란한 문화예술을 뽐냈다. 백제 근초고왕 시대에 마한과 백제는 이미 연합체제로서 지배계층은 백제어를 일반백성들은 마한어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전북 곳곳에서 마한시대 역사유물들은 그 실체적 모습을 드러낸다. 2009년, 1,500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마한 모로비리국(백제시대-모량부리현, 신라 경덕왕16년-756년-고창)의 실체를 가늠케 하는 최상의 유물들이 고창군 봉덕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고창 봉덕리 고분의 금동장식 신발과 중국제 청자 등의 유물은 천오백 년 전의 비밀을 간직한 마한 모로비리국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남지역 영산강 유역 분구묘와 달리 봉덕리 고분은 만들 당시부터 기획해서 만들었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고분의 규모와 크기로 짐작하건대 모로비리국이 마한의 중심세력국가로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정치체이며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문화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의 도·시의 지방자치체와 비슷한 규모였다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전주서부우회도로 건설공사 중(2003년, 2007년) 완주군 이서면에 철기시대 웅무덤이 발굴되었고, 익산-장수간 고속도로 건설 중 완주군 상운리에서 대규모 분구묘도 발굴되었다. 이 밖에도 김제 벽골제, 정읍 지사리·운학리고분군, 고사부리성 등도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전남도의 경우 십여 년 전부터 영산강유역 일대를 중심으로 마한 역사유적지의 발굴조사를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에 아낌없이 나섰다. 심지어 전북 고창을 전남 영광과 엮어 영광·고창문화권으로 설정하여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마한문화의 진정한 중심지였던 전북도는 현재까지 마한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전무하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전북지역 마한의 정치체와 숨겨진 고대문명의 실체를 찾아 발굴·보존·기록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도 차원의 추진단 구성이 시급한 이유다. 이를 위해 전북지역 마한 역사문화의 관광자원화 등 정책 개발 및 지원, 시군과 유관기관 간 마한문화권 세계유산등재 추진 공동발전 협약(MOU)을 신속하게 체결해야 할 것이다. 마한유적지에 대한 도 문화재 지정 및 사적 승격 등은 물론 문화재청을 비롯한 중앙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가 전면에 나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마한 시대 유물의 발굴·보존·기록, 관광 자원화는 전북 몫이다. /전라북도의회 남북교류협력위원장 성경찬 2020.4.27.월 새전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