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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꽤 오래 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흘러나오던 드라마 주제곡 가사의 일부다. 지금도 노래 멜로디가 기억날 정도로 즐겨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대배우 호칭을 받는 최민식씨가 주연이었는데, 당시 나름 열혈 시청자였던 나는 상경한 젊은이가 대도시 서울의 후미진 곳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공감돼서 시쳇말로 본방 사수에 최선을 다하곤 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드라마에서 적절히 묘사된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욕망을 품고 도시의 후미진 곳들로 옮겨갔다. 육칠십 년대에 후후(後後)발 산업국가로 전 세계적인 산업화 대열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이농향도(離農向都) 현상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인데, 산업사회로의 진입 및 산업화 진행 과정은 마치 백미터 스프린터 선수의 폭발적인 스피드마냥 빠르게 전개됐다.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 도시를 향한 대규모 이주현상도 급속하게 병행됐다. 뒤늦게 뛰어든만큼 단기간 내에 모든 게 압축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시란 마치 빈민의 굴레를 벗겨주고 누구라도 환영해줄 것만 같은 유토피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도시의 실상은 노랫말처럼 누구에게나 어울리고 또, 누구든 환영해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 뒤늦은 후회만 반복하게 하는 게 도시의 본모습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쯤이었으니까 서울의 달 이후로 족히 25년은 지난 것 같다. 지금의 도시는 서울의 달이 묘사하던 도시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더 소급해서 60-80년대 도시 모습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 건 무엇일까. 당연히 외관이야 상전벽해 수준으로 달라졌고 이제는 마천루의 향연을 넘어서 첨단 스마트도시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전주시와 같은 도내 주요 도시도 마천루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의 외형이 크게 변했고 도시 곳곳이 차량 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가 욕망을 품고 있는 욕망의 집합체인 것은 변함없다. 물리적 외형은 딴판으로 변했지만 상업과 행정을 비롯해서 다양한 영역의 사회적, 문화적 행위들이 도시공간에서 이루어지고 그러한 행위들은 치열한 경쟁과정을 거쳐 누군가에게는 실현된 욕망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혀질 욕망으로 경험된다.
세월이 흘렀지만 욕망 덩어리라는 도시의 속성은 변함이 없다. 도시는 그것의 형성 자체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산물이기 때문에 도시공간이 존속하는 과정 역시 인간의 무수한 욕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구도심이 텅텅 비는 것도 결국은 집합적 욕망을 담아낼 다른 공간 즉, 신도시가 생겨나기 때문에 용도폐기되면서 비어가는 것 아닌가. 그래서 도시와 욕망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다. 그렇다고 도시가 다수의 욕망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도시공간이 물리적으로 제한돼서가 아니다. 실현될 수 있는 욕망은 애초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이 개인의 욕망이 더해진 집합적 욕망일 경우에는 욕망의 실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전주시가 도시 대변혁을 위해서 그간 유지돼온 도시계획상 각종 규제를 완화한다고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역발전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고 ‘우리도 잘 살아보자’를 열망하는 지역 정서를 고려하면 영 터무니없는 얘기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정체성을 중시하고 개발지상주의를 저어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잘 살아보자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결국 도시의 욕망과 또 다른 욕망의 대립이다. 선출직 단체장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욕망을 공공행정에 반영할 경우 또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듭 말하지만 도시는 사람들의 집합적인 욕망을 다 담아낼 수 없다. 없는 욕망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 이상 선출직 단체장 입장에서는 시민들의 욕망을 외면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서울의 달’은 차면 기울고 말지만 도시에 투영시키려는 집합적 욕망은 차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승우 전북도의회 의원 / 전북도민일보 2022.8.2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