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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되는 청년

작성자 :
총무담당관실
날짜 :
2023-04-04

계속해서 ‘청년’이 화두다. 정치권에서도 그렇고 공공정책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고 3학생이 참정권을 획득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뤄졌고, 청년 정치인이 정계에 입문하는 일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공공에서는 아예 청년정책이 하나의 부문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전담부서의 신설이나 예산 편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청년의 물결’이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청년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지금,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느끼는 것은 온통 청년 물결인데 그 물결이 실체가 있는가 하는 의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와 공공정책 영역에서 그렇게 청년을 강조하곤 하는데 이것이 실제 현실의 변화와 합치하는가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정치 영역에서는 청년정치가 여전히 기성정치에 눌려 있다. 정당운영이나 정치지형, 선거제도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장유유서라는 뿌리 깊은 유교전통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근한 예로 선거철이 되면 “누구는 아직 젊어서 안 돼”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쉽게 접하곤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 청년정치인을 당당한 정치주체로 생각하기보다는 나이 적음 그 자체에만 함몰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전통적 가치관이 ‘어른’ 정치인이 군림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인데, 한국사회가 이미 오픈 에이아이(Open AI)와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적 속성을 띤 전통적 가치관이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체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통적 관념을 자양분으로 하는 기성정치가 청년의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청년정치가 실체적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사회정치적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정적 희망을 가지고 현재의 부조화를 과도기적 현상으로 쉽사리 인정해버리고 마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가치 충돌이 발생할 때 그 한복판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치열한 가치 투쟁 없이 절로 주어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정치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실체적 지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청년 정치가 직면한 장벽을 냉철히 인식하고 깨뜨리려는 과정을 중시하는 한편, 연령과 정치 역량의 비례관계 작동이 반드시 필연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몇몇 청년 정치인의 등장이 실제 청년정치의 장이 확장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실익이 없다. 관건은 청년정치인의 목소리가 정치와 사회 제도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실체적 힘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이지 청년 정치인의 등장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정책도 그렇다. 국가와 지방정부는 청년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강조하기 급급하지만, 실상을 보면 청년은 여전히 배제되고 소외되는 영역으로 머물러 있다. 예산도 여러 집행예산 항목 중에서 가져다 붙일 만한 것들을 모아서 청년예산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구정책예산이 규모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저것 ‘영끌’해서 한 데 모아놓은 단순 집합체에 불과한 것처럼 청년정책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요컨대, 한국사회에서 청년은 소비되고 있다. 정치에서는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며 상한가를 구가하다가 결과적으로 기성정치가 쌓아 놓은 기득권의 장벽을 높이는 데 활용된 후 밀려나고 만다. 제도로서의 정치가 기득권 정치와 동의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청년정치인의 등장을 환호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 주체로서의 청년이 일시적인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청년을 주요 키워드로 강조하면서 청년 붐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법석을 피우는 공공정책 영역도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각종 합의제 행정기구에 청년 몫 하나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있고, 청년을 타겟으로 한 정교한 정책발굴과 시행을 도외시하면서 청년과 함께 하겠다고 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윤영숙 전북도의회의원 / 2023.04.04.(화)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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