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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전으로 치닫는 역사논쟁

작성자 :
총무담당관실
날짜 :
2023-06-16

지역사회가 천년사 편찬작업에 관한 역사논쟁으로 뜨겁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상황이다. 역사적 실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 자체는 권장할 일이지만, 근래 진행되는 것은 생산적인 논쟁을 넘어서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심지어 법적다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들릴 정도이니 사태가 만만치 않게 흘러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잠시 숨을 돌리고 합리적인 타협점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아서 단견이나마 지면을 통해 한 말씀 드린다.

전라도 천년사 편찬작업은 많은 공력을 들인 위업이다. 사업기간만 해도 5년이 넘고, 전북과 전남, 광주 3개 지자체가 총 24억 원의 사업비를 들였다. 저술결과는 서른 권이 넘는 총서와 자료집으로 나왔고, 여기에 200명이 훌쩍 넘는 사학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시간적 범위도 선사시대부터 2018년까지를 포괄하고 있어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천년사 편찬작업은 애초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3개 시도가 공동으로 기획한 기념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서술범위도 말 그대로 고려 이후 현재까지의 1천년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후 서술범위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서 대폭 확장됐다.

역사학에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자체부터가 논란의 씨앗을 잉태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선사에서 고대사, 그리고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사까지 모두 망라한다는 것은 엄밀한 검수 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특히 고대사의 경우 관련 문헌이나 고고학적 조사가 충분치 않아 역사학계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학설보다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사안이 많다고 하는데, 굳이 편찬범위를 선사와 고대사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상식적인 의문도 든다.

핵심 쟁점인 ‘기문’ 논쟁은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미 몇 년 전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등재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돼 완곡한 표현으로 대체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천년사 편찬과정에서도 이런 논란을 예상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편을 들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능력도 식견도 없다. 다만, 누군가 지적한 것처럼 역사서술은 공적 영역이다. 그것이 한 명의 연구결과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천년사는 특정 학자의 자율적인 연구결과물이 아니다. 지역사를 되돌아보고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기 위해 행정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한 공공 저작물이다. 따라서 논쟁을 일삼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집필진은 이를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

논문으로 문제를 제기하라는 집필진의 주장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논쟁에 동원할 충분한 정보와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있지 않다.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논문을 통한 적확한 문제 제기만을 고수하는 것은 자칫 역사 서술이라는 공적 사안을 전문가만의 영역으로 한정시키려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시민단체측에서도 집필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주장은 삼가주셨으면 한다. 생산적인 논쟁에 아무런 실익이 없고 오히려 소모적 갈등만 키울 수 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질문을 던지면 집필진도 성실하게 화답해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제기하는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감정적 언사가 앞선다면 천년사 편찬작업은 ‘전라도 천년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관심 환기’는 고사하고 씻을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불명예스러운 멍에가 되고 말 것이다.

전라북도 문화유산 행정에도 당부하고 싶다. 전라북도 역시 논쟁의 당사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3개 시도를 대표해서 이 사업을 주도한 건 전라북도다. 중간 조정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논란을 덮어버린 채 천년사 편찬작업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사후약방문일지언정, 더디더라도 잠시 숨을 돌리고 공론의 장을 만들어 타협점을 모색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문승우 전북도의회의원 / 전라일보 2023.06.1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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