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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선사한 묵직한 울림

작성자 :
총무담당관실
날짜 :
2023-08-08

가끔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이들보다 인생을 오래 살았고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그저 가르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특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론 기특함을 넘어 가르침까지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동 앞에선 어른이라는 게 부끄러워진다. 얼마 전 화제가 된 풍남초등학생들의 “마약** 광고문구를 바꿔주세요”라는 편지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례다. 



평소 마약류 상품명의 범람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기만 했던 내게 아이들의 행동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옥마을 마약** 광고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한 토론수업에 참여한 71명의 학생들이 편지를 통해 정중하게 대안까지 제시하면서 간판을 교체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하니, 어찌 감동을 받지 않겠는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마약이 들어간 상품명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강한 중독성을 가진 ‘마약’이라는 용어가 가진 강렬함 때문이겠지만, 이젠 마케팅 용어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마약 표현이 들어간 음식점이 전국적으로 약 200여 개에 달한다는 게 이를 시사해준다. 



마약이라는 표현에 대한 관대함 때문일까? 마약 밀매와 마약류 사범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10대 마약류 사범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마약류 사범은 총 1만 8,395명으로, 이 가운데 10대 마약류 사범은 481명에 달했다. 5년 전에 비해 약 3.5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10대 마약류 사범 증가의 이유로 손쉬운 마약 구입 창구로 떠오른 인터넷과 SNS 등이 거론된다. 여기에 10대들이 즐겨 먹는 식품 명칭이나 상호에 남용되고 있는 ‘마약’이라는 표현이 미친 영향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일상에서 마약류 상품명을 자주 접해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지면, 10대들이 실제 마약에 접근할 마음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마약’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음식이나 상호가 마약을 식품첨가물이나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기호품 정도로 인식하게 해 10대들에게 그릇된 인지(認知)를 형성시킬 우려가 있다는 우려는 일리 있는 지적이다. 



10대 마약류 사범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권에 마약류 상품명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흐름이 등장했다. 하지만 상표권과 영업 자유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특히 ‘주요 규제 대상이 식품접객업소 등 소상공인임을 고려할 때 벌칙 적용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소상공인의 처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고충은 십분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한 번 손을 댔다간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마약의 중독성을 고려했을 때, 10대들이 마약 용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현재의 환경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장기적으론 법적·제도적 시스템 정비에 나서야 하겠지만 지금 수준에서나마 소상공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아이들의 바람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학생들의 부탁에 이번 한옥마을 사례처럼 이름을 선뜻 교체한 상인들도 있지만, 마약류 상품명을 교체하고 싶어도 간판이나 메뉴판을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상인들도 있을 것이라 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상인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예컨대 지자체 차원에서나마 마약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품의 상호와 홍보물, 용기·포장 교체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보자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변화를 원하며 행동에 나섰다. 이젠 어른들이 응답해야 할 때다. 고사리손으로 작성한 편지를 통해 선사한 묵직한 울림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켜 궁극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이병도 전북도의회의원 / 전북도민일보 2023.08.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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