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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의 항전을 각오하기 위해 등 뒤로 물길을 둔 채 진을 치고 항전하는 배수진은 최후의 진법(陣法)이다. 물리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우매한 진법이지만 전투에 임하는 전투원들로 하여금 사즉생의 결기를 충만케 함으로써 오히려 물리적 조건을 극복하고 승전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배수진의 역설적 지혜다.
그런데 우리 도민들이 난데없이 새만금 SOC 예산 삭감 문제로 배수진을 치고 항전하듯이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부는 잼버리 파행에 대한 책임을 전라북도에 뒤집어 씌우는 것도 모자라 새만금 SOC예산에서 80%에 육박하는 규모를 날려버렸다.
가뜩이나 새만금으로 간지러운 애간장만 태워 오던 게 수십 년인데 이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아예 나무 밑둥을 싹둑 잘라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니 이번 사태를 두고 ‘예산 칼질’이나, ‘대규모 삭감’과 같은 표현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건조하기 짝이 없고 와닿지도 않는다. 차라리 ‘너네 한 번 죽어봐라’는 협박조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우리 도의회에서는 ‘새만금 SOC 예산 정상화 및 잼버리 진실규명 대응단’을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고, 삭발 투쟁과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맥 빠진 푸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푸념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맥 없이 당하라는 것인가. 그게 도민에게 위임받은 지방의회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정도(正道)라는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저항의 파고는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도의회 대응단에 더해서 ‘전북인 비상대책회의’도 꾸려졌다. 당연히 전라북도의회와 연대해서 힘을 모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정점은 바로 오는 11월 7일 예정된 ‘새만금 SOC 예산 복원 전북 범도민 총궐기대회’가 될 것이다.
이번 총궐기대회는 단순한 상경 시위나 대정부 항의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의회와 전북인 비상대책회의를 위시로 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500만 전북인이 배수진을 친 채 임전(臨戰)의 각오로 나서야 한다.
타 지역의 향우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살다 살다 이런 꼴은 처음 본다”는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전 만나 뵌 자리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가만히 있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11월 7일 총궐기대회는 명실상부하게 전국 500만 전북인의 목소리와 에너지가 응축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새만금개발사업은 온갖 정치적 레토릭으로 애간장만 녹이다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서야 일정 정도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정도였다. 그나마 그것도 이제는 일장춘몽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십 년간 차별과 소외의 멍에를 강요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놓고 칼날을 목전에 들이밀고 있으니 이게 국가가, 정부가 할 짓인지 도저히 상식선에 닿지 않는 행태다.
우리 전북이 배수진을 치고 이대로 쓰러지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다. 다다익선이요, 거거익선이다. 총궐기대회에 몸과 마음으로 동참하는 분들이 많을수록 이번 항전의 의지는 더욱 드높아질 것이고, 항전의 파고가 크고 높을수록 분명한 의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 7일, 이제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그날은 정부가 전라북도 목전에 들이 밀은 칼날을 거두는 날이 될 것이며, 정부를 향해서 500만 전북인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기를 보여주는 날이 될 것이다. 그저 배수진에 담긴 역설적 지혜를 믿을 뿐이다.
김정기 전북도의회의원 / 전북일보 2023.10.2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