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공포의 힘
- 작성자 :
- 의정홍보담당관실
- 날짜 :
- 2026-06-12
지난 2014년 발간된 ‘성장을 이어가는 21세기를 위하여: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지방 활성화 전략’,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는 지방소멸의 위험성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계기였다. 당시 일본 총무상이었던 마스다 히로야는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과 지역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했는데, 이 문제로 일본 내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존속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선 지방 거점 도시의 육성과 팩트 시티 전략 등 ‘지방창생(地方創生)’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는데, 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격적인 지방 정책 수립을 정당화하는 논리적 타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사회를 한국의 10년 후라고 평가하듯,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내에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며, 이제는 각종 보고서와 언론, 정치 담론과 학계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일종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인구감소지역 지정, 청년 인구 유입 정책, 생활인구 확대 전략 등 최근의 다양한 정책들은 상당 부분 이 문제의식 위에서 설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점검이 필요하다. 지방소멸이라는 개념이 단순 현상에 대한 진단을 넘어서 정부 정책의 모든 영역을 잠식하고, 합리적 선택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것이다.
실제 일본 사회에서도 마스다의 지방소멸론은 지속적인 학술적·정치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 비판의 핵심 내용은 첫째, ‘소멸’이라는 표현 자체가 과도한 위기 의식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인구 감소와 지역 재편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지역의 생존 가능성과 연결해 소멸로 귀결시키는 것은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정책의 형성 과정을 위기 대응 중심으로 협소화시키는 한계를 지닌다.
둘째, 인구 만능론적 접근에 대한 비판이다. 인구 중심의 판단은 지역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정책의 목표를 단기적 인구 유입에 치우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담론은 정책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멸 위험이라는 범주화는 특정 지역을 유지와 성장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와 축소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 간 격차를 더욱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지방소멸의 패러다임이 지속되는 이유는 ‘소멸’이라는 단어가 주는 원초적인 공포의 힘 때문이다. 복잡한 구조 문제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라진다’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사안의 심각성과 긴급성은 단번에 각인된다. 이에 따라 소멸 방지에 모든 정책적 선택지가 집중되고, 지속가능성보다는 긴급 처방식의 대처가 주류를 이루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지역은 사라지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재편되는 공간이다. 인구감소는 실패가 아닌 변화의 과정이고, 이 속에서 어떤 삶의 기능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사 걱정이 아닌 변화에 대한 대처 방식을 고민할 때 비로소 지금의 논쟁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정종복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 2026.06.1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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