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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내란 및 친위쿠데타 이후 석 달 가까운 시간(작성일 기준 78일째)이 흘렀다. 역사의 긴 호흡으로 보면 찰나의 순간일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디기만 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국회에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고, 경호처 뒤에 숨어 있던 대통령을 체포했고, 대통령을 파면하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탄핵 심판도 막바지에 다다랐다.돌이켜 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시간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헌정사에 유례없던 내란수괴 극렬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경악을 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어두움을 뚫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빛나던 응원봉이었다. 아니 응원봉을 손에 쥐고 한파와 폭설을 이겨낸 시민들이었다. 그보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말 그대로 버선발로 국회로 뛰쳐나간 시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민의 중심에는 10, 20, 30대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은 우리 농민들이 지난 130년 동안 한 번도 넘지 못했던 남태령을 넘게 했다.‘3.5%의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워스(Erica Chenoweth) 교수가 2013년 발표한 법칙으로 국민의 3.5% 이상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비폭력 저항’으로 시위와 집회를 이어가면 결국 그 정권은 무너진다는 법칙이다. 체노워스 교수는 1900년부터 2006년까지 발생한 전 세계 시민 저항 운동 323건을 분석하고 이러한 법칙을 발표했다. 1986년의 필리핀 피플파워 운동, 1989년의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1991년의 에스토니아의 노래혁명, 2003년 조지아의 장미혁명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대한민국 5천만 국민의 3.5%는 약 175만 명이다. 2016년 제6차 촛불집회 참여시민은 약 232만명, 그리고 지난 12월 14일 약 200만 명의 시민들이 응원봉을 높이 들었다. 100명 중에 3~4명의 소수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된다는 법칙을 대한민국만큼 제대로 설명한 사례가 앞으로 더 있을까? 평화와 연대의 힘을 대한민국 헌정사는 물론이고 전세계 역사에 아로새겨졌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한편, 스웨덴에 있는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매년 민주주의 다양성(Varieties of Democracy, 일명 V-Dem 지수) 지수를 발표한다. 400개가 넘는 민주주의 지표를 활용해 각 국가의 민주주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2021년 평가에서 한국은 주로 유럽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톱 10% 자유 민주주의 그룹에 속한다고 평가되었다. 그랬던 대한민국에서 2024년 독재국가를 획책하는 친위쿠데타가 발생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해결하지 못한 혹은 외면한 문제가 켜켜이 쌓여 온 것은 아닐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청년 여성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보여준 민주주의 모습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성별과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간 놓치거나 방치해 온 인권과 평등의 문제이고 민주주의 다양성 문제이자 연대와 평화의 문제이다.그리고 그 많은 문제는 권력구조의 중앙집권, 수도권 일극의 국가 불균형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강력한 지방자치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앙 권력을 실질적으로 분산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지방에서도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 다양성, 연대와 평화를 논할 수 있는 시민사회와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무엇보다 지방에서 청년과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방에 뿌리내리고 지역사회를 이끌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부터 경제가 살아나는 풀뿌리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위기를 기회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강력한 지방자치에 있다고 믿는다.한정수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 새전북신문.25.02.19.(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