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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작성자 :
의정홍보담당관실
날짜 :
2024-12-18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하나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40년 전 거리에서 간절히 외쳐 부르던 노래를 생전에 다시 부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군사력을 동원한 국가폭력 행사와 민주주의의 붕괴 위기는 분명 눈앞의 현실이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인 세계로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선을 상징하는 영웅이 마귀를 잡아서 요술램프 안에 영원히 가두어 놓았는데 고약한 악당이 나타나서 요술램프 뚜껑을 열고 마귀를 세상 밖으로 꺼내버리고 마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이번 내란 수괴와 그 일당들이 그랬다. 군대를 앞세운 친위 쿠데타나 계엄 선포와 같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암적인 요소들은 20세기의 종말과 함께 역사 교과서 안에 영구히 박제된 채 갇혀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위험천만한 봉인을 해제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악당들을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재등장시키고 만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남몰래 쓸 수밖에 없었다. 입에 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민주주의를 열망했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우리나라 국민의 민주시민 의식은 고도로 발전하였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서구 국가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런 민주주의 역량은 이번 친위 쿠데타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가장 큰 힘이었다. 남몰래 쓰고, 남몰래 외치는 일도 없었다. 나도 그 현장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 불법 계엄 선포에 이어 극적으로 계엄해제가 의결된 직후 목 놓아 외쳤다. 

6일 저녁에는 국회의원회관 옆 휴게실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면서 만일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대기하고 있었다. 라면 맛을 의식하지 못하고 연신 후루룩 소리만 내면서 지금 벌어진 사태를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라니, 한순간에 7·80년대로 회귀하고 말았다는 생각은 컵라면의 국물을 비우고 나서였다. 

한 번의 탄핵안 부결이 있었지만 다행히 두 번째 표결 끝에 탄핵이 의결됐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도 참을 수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국민의힘’은 ‘질서 있는 퇴진’을 운운하면서 탄핵을 막아내는 데 사활을 거는 모습을 버젓이 보여줬다.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총체적인 아노미 상황에서도 오로지 당리당략만을 좇는 집권여당이라니,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친위 쿠데타를 두고 저들은 ”그냥 한번 해본건데 왜들 그래“ 하는 식으로 넘길 요량인 것 같다. 진통 끝에 탄핵 의결을 하고 난 지금도 저들의 안이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이다. 무책임과 몰상식의 끝판왕을 보여준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행태는 전 국민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성찰하게 되는, 하나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그것이 하나의 표현으로서든 아니면 정치적 개념이 되었든 평상시에는 전혀 느끼고 의식하기 어렵다. 마치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당연히 누리게 되어 있는 무엇처럼 여기기 마련이다.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말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법을 유린한 이번 친위 쿠데타는 민주주의가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하는 상수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수로 돌변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7·80년대가 아닌 21세기 오늘날에도 내 머리와 내 발길은 여전히 ‘너’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명연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 / 전라일보. 2024.12.1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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