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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작성자 :
김연근
날짜 :
2008-02-11
설을 앞두고 전북에 겹경사가 생겼다. 원광대 로스쿨 유치는 2007년 말 전북에 쏟아진 해피뉴스에 이어 2008년의 첫 번째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며칠간 로스쿨유치와 관련한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며, 같은 업(業)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러한 행태는 일반시민들이 냉소적으로 정치인을 바라보는 이유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달 31일 원광대 로스쿨 유치 확정소식이 전해지자 익산시 현역 정치인들이 이와 관련해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 원광대 로스쿨 탄생을 이끌 수 있었다’고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기에 바빴던 것이다. 한 시간 뒤, 이번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익산(을)에 출사표를 던진 윤승용 후보가 기자회견장을 찾아, ‘로스쿨 유치가 정치적 입김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색을 낼 수 있냐’며 앞서 기자회견을 한 국회의원을 비판했다. 로스쿨 유치를 위해 청와대 내의 T/F팀 설치, 윤승용 자신이 팀원이었다는 내용 등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돼, 자신의 과대발언 해명과는 달리, 대부분의 언론은 윤승용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 급기야 로스쿨 유치에 실패한 대학이 검찰수사촉구까지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의 결과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너무나 간단한 법칙임에도, 얼마나 자주 위배되고 있는가? 여기서 나는 후에 전개될 사건의 방향을 떠나 이 자리에 멈춰 ‘정치인의 생리’에 시선을 고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정치가 좀더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일부 국회의원은 지역의 이익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있다. 도민의 역량으로 이루어낸 일들을 마치 자기 자신의 치적인 양 그렇게 포장하는 일에 온갖 심혈을 기울인다. 현재 일부 국회의원들은 재야인사나 단체장의 노력까지도 자신들의 공적으로 돌리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이러한 정치인의 행태로 지역은 양극화 분위기까지 연출된다. 이번 사건 또한 예외는 아니다. 시작은 현역의원들의 공적 쌓기였다. 국회의원(정치인)의 역할은 시민의 대변인으로서, 공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 환경에 맞는 토양을 조성해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단으로써의 책무에 속한다. 이 책무를 어찌 치적(治績)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지난 해 12월, 9년 8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로버트 김을 기억하는가? 그는 미국 정부의 비밀사항을 한국에 넘겨줬다는 ‘국가기밀 누설혐의’로 FBI에 체포되었다. 그의 발언을 잠시 빌려보자면, ‘가난한 친정을 걱정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였다. 그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 행동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조국에 대해 조건없는 헌신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묵묵부답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외침은 동일하다. ‘한국정부가 도움을 받았다고만 말하면 내 명예는 회복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말이 없다. 아직 나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다.’ 윤승용씨도 가난한 익산시의 살림을 걱정했을 것이다. 도움을 주었다는 발언을 과감히 할 수 없는(하지 말아야 할) 상황만이 로버트 김과 다를 뿐이다. 시민들은 겸양(謙讓)의 미덕을 갖춘 정치인을 바라고 있다. 그런 정치인을 가려낼 줄 아는 혜안도 지녔다. 정치인들이 겸양의 미덕을 익힌다면 정치의 성숙에 기여할 것이다. 정치가 오명을 씻고 좀 더 명예로워질 때 정치는 원활히 작동하고, 그 원활한 정치는 이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로스쿨 문제는 이제 과거의 과제가 아닌 미래의 문제다. 로스쿨 유치를 통해서 지역발전의 비전을 세우는 것은 생산적인 토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민과 지역을 대변 하겠다는 정치인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큰 아쉬움을 갖게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은 원광대 로스쿨 유치의 성과를 어떻게 익산 발전의 기폭제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인 것 같다. 이번 로스쿨 유치를 통해 보고 싶은 것 또한 이런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정치다. 로스쿨 유치로 인한 일들로 윤승용씨를 전북판 로버트 김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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